[한국일보 21.03] 현장선 '파이썬' 쓰는데 대학은 '자바' 교육… 기업들 "바로 쓸 신입이 없다" | |||
작성일 | 2021-08-07 | 조회수 | 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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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이 급속도로 재편되고 있다. 그러나 산업 현장이 원하는 인재를 배출해야 할 대학은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 턱없이 부족한 IT 개발자를 모셔가려고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연봉을 높인다. 상아탑이 산업 흐름에 뒤처진 원인과 해법을 진단하는 기획 시리즈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 국내 자동차 대기업 A사는 자율주행차와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일할 대졸 신입사원을 뽑으면 가장 먼저 기본적인 프로그래밍 언어부터 새로 가르친다. 일명 ‘파이썬 (Python)'으로 불리는 이 언어는, 간결한 문법에 직관적인 구조로 돼 있어 산업 현장 대부분에서 널리 사용 중이다. 미국 등 해외 대학도 벌써 수년 전부터 프로그래밍 개론 수업의 언어를 기존 자바 등에서 파이썬으로 바꾸는 추세다. 하지만 국내 대학 출신 신입사원 대부분은 여전히 C언어, 자바 등만 알고 들어오는 실정이다. 파이썬을 정규 과목으로 채택한 대학이 거의 없어서다. 독학이나 교양 과목 수강을 통해 파이썬을 배우고 오는 신입사원들도 있지만 현장에서 바로 쓸수 없는 기초적인 수준이어서 A사는 반드시 6개월 가량의 재교육을 시킨다. A사 관계자는 "자바와 C언어 등은 기본 중의 기본이어서 당연히 배워야하고 중요하다"며 “파이썬은 평생교육원에서도 가르치고 심지어 아이들 코딩 교육에서도 쓰는데 오히려 대학 정규과목에는 없어 입사 후 6개월 동안의 재교육을 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 통신 대기업 B사는 매년 해외 인공지능(AI) 주요 학회마다 채용 담당자를 총출동시킨다. 이들의 주요 임무는 학회 발표자 등 일급 인재 섭외 외에도 해외 유명대학 교수의 환심을 사는 일이다. 교수에게 고액 연구과제를 내주며 마음을 얻은 뒤, 추후 그들이 거느린 일류 졸업생을 영입하는 확률을 높이려는 것이다. B사 관계자는 “국내 대학 졸업생들 중 괜찮은 신입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며 “인재들이 몰리는 해외 유명 대학과 교수에게 잘 보여야 그나마 제자들이라도 데려올 수 있다”고 말했다. 정보기술(IT)과 신재생에너지, 미래차 등 이른바 미래 신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관련 인재 확보가 기업들의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 하지만 산업현장이 원하는 인재를 공급해야 할 국내 대학은 정작 이런 변화의 흐름을 전혀 따라잡지 못하는 실정이다. 일선 현장에선 "국내 대학 졸업생 대부분이 현장과 괴리된 교육을 받고 있어 실전 투입이 어렵다"는 아우성이 넘쳐 난다. 결국 당장의 전쟁을 수행할 '경력직'에 수요가 쏠리고, 대학 졸업생의 신입 취업은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굳어지고 있다. 산업 흐름에 뒤처진 한국의 상아탑 실태와 해법을 진단해 본다. 심각한 신산업 '인재' 부족22일 산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증강ㆍ가상현실(VR) 등 국내 4대 미래 유망분야에서 3만1,833명의 신규인력 부족을 점치고 있다. 특히 AI분야와 증강ㆍ가상현실 분야에서는 초ㆍ중급보다 대학원 이상의 고급인력 부족현상이 각각 7,268명과 7,097명으로 전망돼, 인력 수급의 질적인 '미스매칭'도 심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고액 연봉을 앞세운 IT 업계 전반의 '인재 영입 전쟁’은 이런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달 1일 신입사원 초봉 800만 원 인상을 발표한 넥슨을 비롯해 올해 파격 조건으로 개발자 채용에 나선 게임업체는 8곳에 이른다. 넥슨과 함께 업계 쌍두마차 격인 엔씨소프트는 개발직군은 1,300만원, 비개발직군은 1,000만원씩 정규 연봉을 올리는 동시에 CEO 특별보너스로 전 직군에 800만원씩 추가 지급하기로 했다. 지난달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이 개발자 최저 연봉 5,000만원과 스톡옵션 등을 내걸고 나서자, 배달의민족과 부동산 정보 플랫폼 직방도 개발자 초봉을 6,000만원으로 올리며 치고받기 식의 연봉 인상 레이스에 합류했다. 최근 네이버와 카카오가 역대 최대 규모 개발자 채용에 나선 것도 개발자 대거 유출 사태와 관련이 깊다는 후문이다. 심지어 삼성전자 소프트웨어(SW) 개발 핵심 임원이 최근 쿠팡으로 이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막대한 연봉과 인센티브를 내건 개발자 유치전에는 삼성조차 예외가 아님이 확인된 것이다. 극심한 인재 부족에 시달리는 IT 업계에서는 인재를 추천하면 최고 1,000만원 포상금까지 주고 있다. 네이버는 피추천인이 입사 후 수습 과정을 마치면 추천인에게 20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넥슨도 피추천인이 채용돼 6개월 이상 재직할 경우 사내 추천인에게 포상금 200만원을 제공한다. 맞춤보험 테크사인 보맵은 직원이 추천한 경력자가 1년 이상 근무 시 추천 직원에게 포상금 1,00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수소 분야 인재, 기업들이 돌려 쓰는 처지"이 같은 심각한 인력 부족에도 기업들은 좀처럼 국내 학부 졸업생 채용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AI 등 신산업 기술의 상업화 시계는 점점 빨라지는데, 신입 인력은 현장과 괴리된 교육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수소사업을 주도하는 C사 인사 담당자는 “신입사원을 뽑아서 어디다 쓰겠냐”며 “100% 경력으로만 채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업체는 정부가 수소자동차 보급에 나서면서 수소 생산과 운반 등 최첨단 수소 인프라 사업 진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 관계자는 “몇 년 안에 회사의 명운이 갈릴 수도 있을 만큼 급변하는 상황에 어떤 경영자가 신입을 뽑아서 수년간 교육시켜 활용할 수 있겠냐”면서 “현재 국내 수소 분야에 일하는 인력은 각 기업이 스카우트하며 돌려쓰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기업들은 국내 대학 대부분이 AI 등 개발을 위해 일선 실무 현장에서 널리 쓰고 있는 프로그래밍 언어조차 가르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국내 한 자동차 업체 관계자는 “프로그래밍이나 소프트웨어 인력 관련해서는 학부에서 배우는 것이 C언어, 자바 등인데 이는 실무용보다는 기본에 가깝다”면서 “현장에서는 프로그래밍 언어가 파이썬이 중심이 돼 있는데 이를 제대로 가르치는 대학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이 자동차 업체 관계자는 “일부 학교의 평생 교육원에서도 가르치고 있는 파이썬이 대학의 정규과목에는 없는 게 현실”이라며 “학부 교육 프로그램이 얼마나 고착돼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다급한 기업들, 직접 대학 교육 나서기도견디다 못한 기업들이 직접 대학의 인력 양성에 개입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세계 1위 스판덱스와 탄소섬유 등 특수섬유를 생산하는 효성은 2011년부터 서울대와 카이스트(KAIST) 등 국내 주요 대학에서 산학협력강좌를 개설해 첨단소재 산업에 필요한 연구·개발(R&D) 특화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효성 연구원이 직접 강의를 하고, 이 가운데 우수한 인력은 연구소로 채용하는 방식이다.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하는 한화솔루션도 국내 대학에서 인재를 찾기 어렵자 지난해 아예 고려대에 에너지학과를 개설했다. 한화솔루션 관계자는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 관련 전문 학과가 국내 대학에 없다 보니 신입사원을 채용한 후 회사 차원에서 교육시켜야 하는데, 그 비용과 시간이 상당한 부담이 있다”고 말했다. 외부 인재 영입에 한계를 느낀 기업들은 사내 인력을 재교육해 전문 인재로 키우는 경우도 있다. KT는 지난해부터 사내 인력을 재교육시켜 AI 인재로 키우는 ‘AI 인재 육성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내ㆍ외부 전문 교육 인력을 통해 AI, 클라우드, 디지털 전환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 대상으로 선정되면 5개월간 업무에서 배제되고, 코딩과 프로그래밍 등 관련 기술을 습득하게 된다. KT는 내년까지 총 1,000명의 개발인력을 육성하고 이 인력을 현업에 최우선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기업들은 국내 대학이 급변하는 산업계 흐름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인력 부족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학이 10~20년 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교육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대학에서 현장에서 필요한 기본을 가르치면 입사 후 곧바로 실무 경험을 통해 중견 개발자로 성장할 수 있는데 지금은 이런 성장 사다리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며 “개발자 수요 급증에 맞춰 관련 교육이 변해야 하는데 당장 교수들이 이를 가르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변화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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